WOONG GALLERY

기억의 조합, 그 낯선 응시 A Collection of Memories, An Unfamiliar Gaze
남기호 (Kiho Nam)
2023.10.25 - 11.25

남기호: 기억의 조합, 그 낯선 응시

 

 

남기호는 특별한 조형 문법을 사용하는 작가이다. 그는 40여 년 동안 선, , 구성, 형태, 묘사, 색채, 표면, 질감, 물체에 기억(memoire)’을 담는 독창적인 조형 문법을 탐구해 왔다.

기억은 우리 삶에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친다. 기억은 우리 각자의 개별적인 존재의 이야기를 보존하는 놀라운 힘이 있다. 그러나 마치 모래처럼, 기억은 침식, 왜곡, 변형될 수 있고, 심지어 새롭게 편집되어 재해석될 수도 있다. 남기호의 작품에서 소환된 기억의 본질이다. 그가 말하는 기억들은 특이한 사건들에 대한 다면적인 기억들이다. 그것은 생생하면서도 시간의 변덕과 뒤섞여 있고, 오랜 기억조차 다시 한번 낯설게 만들기도 한다.

기억은 그가 프랑스에 체류하는 동안 특히 뮤지엄에서 마주한 순간과 경험들이 주를 이룬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카라바지오, 보티첼리, 다비드, 들라크루아 같은 대가들의 명작에서 특정 신체 부위만을 응시한 최근 시리즈는 전작에서 자주 썼던 시간 속 기억을 조합한 표현 방식과 같은 맥락이다. 신작의 각별함은 큰 그림에서 손이나 발, 얼굴 부분만을 차용해 콘크리트 조각(또는 면도용 거울)의 크기와 형태만큼만 신체 부위를 볼 수 있게 한 구성에 있다. 역사적 발굴을 통해 뮤지엄에 소장된 오랜 유물처럼 느껴지도록 한 구성과 불완전한 형태가 주는 낯섦에 시선이 끌린다. 커다란 작품에서 의도적으로 떼어낸(혹은 떨어져 나온 듯한) 조각 그림들이 이국적 분위기를 띄며 우리에게 낯선 관점에서 대상을 응시하도록 강요한다.

작품을 처음 마주한 관람자는 조각 그림 속 인물의 형상을 더듬어보지만, 이내 기억에 대한 의심과 혼란에 빠진다. 부분만 그려진 그림으로는 인물의 성별, 신분, 직업은 물론이고, 의상의 모양이나 장면의 분위기 등 어떤 것도 명확하게 알 수 없다. 호기심이 커지면서 그 원작(출처)을 알고자 하는 충동도 증가한다. 그러나 정확한 출처를 알기 전까지 남기호의 작품 속 인물들은 익명으로 존재한다. 이것은 결국 원작에 대한 이질적인 해석과 서로 다른 가치를 유발시킨다. 남기호는 바로 이 순간을 탐구한다. 그는 우리에게 친숙한 특정 대상이나 주제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환기시키며, 그것에 다가가거나 받아들이는 맥락에 따라 대상과 주제가 전혀 다른 존재와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목구비, , 다리, , 옷 등은 모두 사람의 모습 전체를 구성하는 부분이지만, 그 일부만으로도 사람의 성격이나 이미지를 드러낼 수 있다. 예를 들어, 이번 신작에서 중요하게 묘사된 눈은 생기, 경악, 슬픔, 분노에 이르는 감정 표현의 창 역할을 하는 동시에 감시, 권위, 통제를 상징한다. 이처럼 남기호가 명작에서 빌려온 얼굴과 신체 요소들은 현실의 경계를 초월하며 그의 기억에 새겨진 감정이 스며든 초현실적인 실체로 바뀐다. 그리고 원작 대신 그가 분리해낸 구체적 이미지는 우리 기억을 뒤흔드는 자극제로 작용하며, 원작의 아우라와 다른 모습을 경험하게 한다.

정리하면, 남기호의 근작은 기억의 조합으로 추출한 이미지에 대한 낯선 응시이다. 단순한 시각적 감상을 넘어 우리의 사고와 내면을 파고들어 현실과 추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기억을 재현하고 우리의 사상과 감정을 끊임없이 자극한다.

 

변종필(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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